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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인간의 기원에 대해 묻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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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인간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누구나 한번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 프로메테우스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평생 쇠사슬에게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영원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을 가져다주어서 인간을 만든 신이라고 알려져있기도 합니다. 신의 이름을 차용한 영화가 바로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입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인간의 기원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2012년에 국내에서 개봉하였고,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감독,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 많음에도 에일리언 시리즈를 언급한 이유는, 지금부터 얘기해볼 영화 프로메테우스가 바로 에일리언 시리즈의 프리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프리퀄이란, 시간 순서상 앞선 이야기를 담은 속편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의 이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을 만든 프로메테우스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2017년에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후속작, 에일리언 : 커버넌트(ALIEN: COVENANT)가 개봉되기도 하였고,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시리즈들은 인기 배우인 마이클 패스벤더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연인 누미 라파스는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유명세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2. 지적설계론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우리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진화론을 일반 과학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지적설계론을 기초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적설계론이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의도적으로 생명 창조에 개입하여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이론입니다. 창조론과 그 대를 함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화론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쇼 박사(누미 라파스)는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팀을 꾸려 인간의 조상을 찾아 여정을 떠납니다. 조상들이 지구에 남긴 흔적들을 단서로, 마침내 인간의 조상(엔지니어)을 깨우는데 성공하고, 그들은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묻습니다. "나를 왜 만들었나요?" 하지만 조상들은 쉽게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조물이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을 불쾌하게 느끼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느 정도 예고되어 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우주를 항해하며, 안드로이드 로봇인 데이빗은 인간에게 같은 것을 묻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대수롭지 않게 능력이 되어서 만들었다고 답합니다. 데이빗은 로봇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로봇의 감정이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서의 엔지니어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큰 고민 없이,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피조물이 존재의 의미를 찾아달라 아우성이었으니, 엔지니어에게 인간은 귀찮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왜"라는 질문의 대가

사람을 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노력합니다. 이유를 찾은 사람은 그 목적을 가지고 삶을 꾸려나갈 확률이 높을 것이고,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도 나름대로 삶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왜"라는 질문의 대가입니다. 하지만 존재 이유가 없다고 가치가 없는 삶일까요? 요즘의 저는 인간 존재의 이유는 따로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찾을 필요도, 찾을 이유도 없다고 여깁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의미와 목적을 찾는 것이,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삶을 잘 꾸려나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이지만, 단순히 "왜" 존재하는가, "왜" 태어났는가 등 태초의 목적을 찾기 위한 "왜"라는 질문은 오히려 주변의 모든 것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는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한 때는 저도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를 외부에서 찾고자 노력해왔던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선천적으로 주어진 운명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운명은 큰 틀에서 정해져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운명 안의 작은 조각들은 스스로 만들고, 맞추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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